산행일자 : 2011. 12. 25(나홀로)

산행코스 : 율림회관-국수봉-은을암-치술령-불광사-율림회관  

산행시간 : 5시간 40분(09시 30분 출발-15시 10분 도착)

 

전국을 강타한 영하의 날씨!

율림회관을 나설 때 양뺨을 강타하던 칼바람에 몇 번이나 산객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일단 산길에 접어들면 바람이 잠잠하리라 생각하고...

그러나 국수봉 정상을 오를 때 까지 칼바람은 지칠 줄 모르고 왼뺨을 강타하였다. 국수봉을 지나 은을암으로 가는 길은 거짓말 처럼 바람 한 점 없었다.

잠깐 은을암에 머물며 암자의 유래를 되새겨보고 치술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낭재를 지나 426 봉우리에서 숨을 고른뒤, 610봉우리까지의 급 오르막은 산객을 가장 많이 힘들게 하였다. 610봉우리에서 치술령으로 오르는 길은 철쭉 군락지 였다. 봄날 이 길을 걸을때는 탄성이 나오리라. 치술령에서 법왕사까지 하산 길은 찬바람 없는 비교적 쾌적한 길이었다. 법왕사에 들려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추운날씨 탓인지 카메라 배터리의 방전으로 아쉽게 박재상 유적지를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다. 

차는 율림회관에 있는데... 찬바람은 불고... 박재상 유적지에서 율림회관까지는 가까운 길은 아니었다. 

 

경주 쪽 망부석

                부산일보 탐색 길

 

망부석 그리고 은을암(隱乙岩)

신라 18대 실성왕 원년(402)과 11년(411)에 왕은 내물왕의 아들인 미사흔(미해)과 그의 형 복호(보해)를 각각 일본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실성왕이 내물왕에 의해 고구려에 볼모로 간 것에 대한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성은 내물왕의 아들 19대 눌지왕에 의해 죽게 되었고, 눌지왕은 자신의 두 동생을 찾아올 변사(말 잘하는 사람)을 구했는데 신하들이 삽량주(양산)의 간(干) 박제상이 어질고 지혜가 있다하여 그를 고구려에 보내 동생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박제상이 고구려에 복호를 구해오자 다시 일본에 있는 미사흔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박제상은 이에 죽음을 맹세하고 처자도 보지 않고 율포(지금의 강동)로 가서 배를 띄워 왜국으로 향하였다. 그의 아내가 이 소식을 듣고 포구로 달려가서 배를 바라다보고 대성통곡 하며 '잘 다녀오시오'하였다. 박제상이 돌아다보며 '내가 왕명을 받아 적국으로 들어가니 그대는 나를 다시 볼 기약을 생각하지 말라'하고 바로 왜국으로 들어가서 마치 신라를 배반해 온 사람과 같이하여 의심을 사지 않고 결국 미사흔을 구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박제상은 탈출을 돕기 위해 왜국에 남아 있다가 잡혔는데, 이때 왜왕이 박제상을 회유하려고 하였으나 박제상은 '차라리 계림(신라의 옛 이름)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라고 하여 결국 왜왕에 노여움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속세에 이르기를 제상의 발 가죽을 벗기고 갈대를 벤 뒤 그 위를 걸아가게 하였는데, 지금 갈대 위에 피의 흔적이 있는 것을 세상에서는 '제상의 피'라고 한다....  1934년 본 [울산읍지]에 따르면 망부석은 치술령 산꼭대기에 있으며, 박제상이 왜국에서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 김씨가 슬픔과 원한을 이기지 못하다가, 딸 셋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서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낭군의 뒤를 따라 정절로써 죽으려 하자 딸 셋도 따라 죽으려고 하기에 둘째딸 아영에게 이르기를 '너는 살아남아서 너의 동생 문랑(당시 6세)를 양육하여 아버지의 후대를 잇게 하여라' 하였으며, 큰 딸 아기와 막내 딸 아경은 부인 김 씨를 따라 정절사 하였다.

죽은 모녀 세 사람의 시신은 곧 돌이 되어 망부석이 되었다고 하며, 넋은 새가 되어 망부석 남쪽 십여 리에 있는 바위틈으로 날아가 숨었는데, 그 바위를 은을암이라고 하였다. (출처 : Daum 지식)   - 유익한 산행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산행 들머리

 

 

나무는 봄을 기약하리...

 

국수봉 능선 이정표

옥녀봉 방향(오른쪽)으로 10여 미터 가면 국수봉 정상. 은을암은 여기서 치술령(왼쪽) 방향으로 100여 미터 더 가야 함

 

 

셀프로 한 컷!

국수봉에서 바라본 옥녀봉

 

 

 

 

은을암 방향의 이정표

 

은을암가는 급 하강 길

 

 

은을암(隱乙岩)  

 

 

 

극락전

 

 

 

 

 

 

425봉 삼거리

 

426봉우리에서 610봉우리로 이어지는 가장 힘들었던 급경사

 

 철쭉 군락지

 

갈비봉

 

 

 

신모사지

 

 

 

망부석(경주 쪽)-정상석 바로 아래에 있음

 

아래서 바라본 경주 쪽  망부석

 

울산 쪽 망부석-정상에서 법왕사 방향으로 30~40미터 아래에 위치 함 

 

울산 쪽 망부석 전망대

 

지친 산객들의 심터가 되어 주는 소나무- 울산 측 망부석 바로 옆에 위치 하고 있음

 

법왕사

 

법왕사 삼십 삼 관음 성지

 

 

 

신묘년의 끝자락, 12월!   

햇살은 눈부신데, 제법 찬 바람이 귓전을 스친다.

 

산행날짜 : 12월 10일(나홀로)

산행코스 : 장안사 주차장-장안사 뒤-불광산-척판암-장안사 주차장

 

 

산행 들머리

 

 

 

 

 

왼편은 장안사, 오른쪽은 척판암 가는 길

 

 

척판암으로 이어지는 극락교

 

 

 

척판암은 신라 문무대왕 1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셨다.

 척판암에서 원효대사님이 선정중에 혜안으로 살펴보니 당나라 종남산 태화사의 천명 대중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알고 海東元曉擲板救衆이라고 쓴 큰 현판을 불가사의한 신통력으로 태화사에 날려 보냈다. 그곳 대중들이 공중에 떠 있는 현판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법당에서 뛰쳐나와 보는 순간 절 뒷산이 무너져 큰 절이 매몰되었다. 이 인연으로 목숨을 구한 천명의 중국 스님들이 척판암으로 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원효스님은 그들이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마중 나와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척판암 유래 안내문에서)

 

 

 

장안사

 

부처님 진신사리 7과가 모셔진 탑

 

 

눈부시도록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  지금이 12월?

달음산 정상 양지 바위 아래엔 계절을 잊은 진달래가 살포시 웃고 있었다. 

 

마을회관을 산행 기점으로 하여,

왼쪽 월음산 방향의 등산로는 쏟아지는 따뜻한 햇쌀과 아름들이 편백나무 내음속에 아주 아늑한 산행이었다.

달음산 정상에서 옥정사  방향으로 하산길을 택했다. 어제 내린 비의 영향인지 6,7부 능선 길은 매우 질퍽했다.

산행방향은 옥정사 방향에서 달음산 정상을 올라, 월음산 못미쳐 광산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이 무난하리라 생각 된다.

 

산행날짜 : 2011. 12. 4(나홀로)

산행코스 : 광산마을회관-월음산-달음산-옥정사-광산마을회관

 

 

 

 잘 정돈된 등산로

 

저멀리 주봉이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면 월음산 정상

 

월음산 정상

정상석은 없지만, 나무 가지에 여기가 정상임을 알려주는 글자가 보인다.

 

 

 

달음산 정상

 

지금이 과연 12월!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며

 

 

 

 

옥정사

 

 

 

 

 

 

 

      

지난 여름날, 천성산을 등반하면서 들렸던 홍룡사.

한적한 날, 다시 한번 찾으리라 했던 천년고찰이었다. 

 

그리고 

꼭 한번 경주 남산 감실부처를 찾아뵈리라 했던 나와의 약속,

오늘 시간 내어 길을 걸어 보았다.   2011. 12. 1(목요일) 

 

 

 

 

 

 요사체

 

 무설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

 

 

 

 

 

 

 경주 남산 불무사(佛無寺)(옥룡암) 가는 길. 

철 지난 단풍

 

 대웅전

 

대웅전 왼편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서면 ‘경주남산탑곡마애조상군(慶州南山塔谷磨崖彫像群)’-부처바위이를 만난다.

 

 북쪽면-마주선 9층 목탑과 7층 목탑 사이에 석가여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탑 앞에는 사자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동쪽면-가운데에 여래상이 새겨져 있고, 주위에는 비천상, 승려상, 보살상, 인왕상 나무 등이 새겨져 있다.

 

 

 

3층 석탑

 

남쪽면-삼존불 그리고 그 옆에는 여래상과 승려상이 새겨져 있다.

 

 

 

 

서쪽면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옥룡암 주차장에서 300m 정도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좌측에 불곡 마애여래좌상 가는 안내판이 나온다.

자연암을 0.9m나 파내어 감실을 만든 후 조각한 여래좌상, 할매부처로도 불린다. 머리부분은 깊은 돋을새김으로 되어있고 두건을 덮어쓴것 같은데 귀 부분 까지 덮여있다.  얼굴은 약간 숙여져 있으며, 둥글둥글하게 조각하고, 어깨는 부드럽게 곡선을, 손은 옷속에 넣어 표현되지 않았고 옷이 수직으로 흘러내려 사각형 대좌를 덮고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꽤 오랫만의 화창한 주말.

길 따라, 바람 따라  산을 찾았다.

수리봉을 거쳐 문바위, 억산까지의 기분줗은 산행과  범봉으로 오를 때의 힘든 발걸음은 산객에게 많은 것을 일께워 줬다.

범봉에서의 직선 하산길은 너무 힘들어 권하고 싶지 않은 코스다.

 

산행일자 : 11월 13일(일요일)

산행코스 : 석골사-수리봉-문바위-사자봉-억산-범봉-석골사

산행동지 : 나홀로

 

 

 수리봉 가는 길목. 낙엽속에 활짝 핀 계절을 잊은 그대는!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도다.

  

 

 산행 들머리

 

 계절은 저 마치 가는데 웬 진달래!

 

 

 

 왼쪽 북암산과 오른쪽 문바위를 배경으로

 

  셀프로 한 컷!

 

   

  표지석 뒤의 사자봉이 배경이 되어 준다.

 

 사자봉

 

 

 왼쪽 봉의저수지방향의 가인계곡에서 불어오던 시원한(조금은 차가운) 계곡 바람과 오른쪽 석골사에서 불든 따뜻한 훈풍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산객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했다. 

 

 

 

용으로 승천 하지 못했던, 그 옛날 대비사 상좌의 슬픈 전설이 전해오는 억산 정상의 갈라진 바위 

 

 

 억산에서 내려다 본 가인계곡

 

팔풍재 산 허리

 

팔풍재

 

범봉을 오르면서 돌아본 억산

 

식사하시는 분께 사진한장 부탁을 드리고

 

 범봉에서 하산하는 길에 돌아본 억산

 

산행 기점의 석골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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